아직, 만들어지는 중입니다
창작이 머무는 작업실의 하루
작업실 문을 열면 완성된 작품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반쯤 그리다 만 스케치, 그을린 나무 조각, 발주서와 커피잔. 서울디자인창업센터에 입주한 두 창작자, 주얼리 브랜드 '아이즈 어라운드 더 레이크'의 이영빈과 가구 디자인 스튜디오'신유'의 유승민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무엇을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만들기까지 하루를 어떻게 쓰느냐고 말입니다.

서울디자인창업센터 동대문캠퍼스에 자리한 이영빈 창작자의 공간
국화 한 송이에서 반지와 펜던트가 태어나기까지
핸드메이드 주얼리 브랜드 '아이즈 어라운드 더 레이크' 이영빈 창작자
이영빈 창작자에게 국화 한 송이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꽃이 아닙니다. 같은 이름 아래 얼마나 다른 얼굴들이 숨어 있는지를 산책 중에도 발견합니다. "이런 잎도 국화고, 저런 모양도 국화예요." 끝이 돌돌 말리는 스파이더 국화, 붉고 푸른 색이 나란히 있는 자리공, 들깨 잎맥의 결까지 눈에 담은 디테일은 스케치로, 다시 손끝에서 반지와 펜던트로 옮겨갑니다. 대부분 직접 만들지만, 정말 섬세한 몇몇 공정만 믿을 수 있는 손에 맡깁니다. 그 결과물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감탄사가 나오고 말죠.
"너무 예쁘다, 진짜 예술이예요."

(첫 번째) 이영빈 창작자 (두 번째, 세 번째) 식물의 디테일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된 반지들
[아이즈 어라운드 더 레이크(Eyes Around The Lake)]
분야: 핸드메이드 주얼리/ 브랜드 시작: 2024년/
서울디자인창업센터 입주: 2026년2월, 동대문 캠퍼스
(https://www.instagram.com/eyesaroundthelake/ · https://eyesaroundthelake.com/)
원래 산업디자이너였던 그는 2024년 '네이처'라는 이름으로 브랜드를 시작했습니다. "여태껏 사람들이 못 봤던 주얼리는 뭘까, 그런 생각을 좀 많이 했죠." 그 끝에 나온 이름이 아이즈 어라운드 더 레이크. 고요한 새벽 호수, 그 위를 떠도는 반딧불과 별, 물을 마시러 온 짐승들을 표현한 이름이었습니다. 이후의 모든 작업이 그 이미지를 향해 조금씩 더 또렷해졌습니다.
담담하게 흘러나온 이야기 중 가장 오래 남는 대목은 브랜드1년 차의 기억입니다. "제가 너무 마이너한 취향인가라고 생각하던 때였어요. 그때까지는 큰 반응이 없어서 이게 맞나하는 고민이 깊어졌죠."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 것 같던 시간, 그는 포기 대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좋다고 느낀 것을 정확히 붙잡아 작업으로 옮기는 일, 그 이상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누군가는 알아봐주리라는 믿음을 놓치지 않고. 그렇게 서울디자인창업센터 동대문 캠퍼스에 자리를 잡은 후 조금씩, 정말 조금씩 브랜드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해외 바이어에서도 연락이 오고 편집숍에도 입점하게 되었어요. 저의 작업을 지지하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볼 때 정말 행복해요."
이제는 확신을 안고 다음 관찰의 대상을 향해 걷습니다. 지속가능한 작업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며, 그 꿈을 서울디자인창업센터 동대문 캠퍼스에서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식물 시리즈에 이어 다음에 구상하는 건 곰팡이와 버섯, 낯설고 어쩌면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질 수 있는 형태들입니다. 식물에서 그랬듯, 그는 거기서도 분명 아름다움의 지점을 찾아낼 것입니다.

스케치에서 제품 제작까지 수작업으로 섬세하게 작업하는 모습
이영빈 창작자의 하루
정해진 틀보다 그날의 우선순위에 따라 유동적으로 짜이지만, 큰 흐름은 대체로 비슷한 편입니다.
· 10:00 | 출근. 바로 작업실로 향하는 날도 있고, 협력 업체나 공장에 들러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오는 날도 있습니다.
· 출근 직후 | 밤사이 온 메일과 메시지를 확인하고 답장부터 정리합니다.
· 오전~오후 | 그날그날 가장 필요한 업무에 집중하는 오전 타임. 디자인 업무가 많은 날엔 스케치로 시작해 형태를 잡고,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실제 사이즈와 비례를 확인합니다. 콘텐츠 작업이 많은 날엔 완성된 결과물을 촬영해 릴스로 편집하거나 사진에 짧은 글을 붙여 업로드합니다. "사진 촬영하는 날로 하루를 전체를 쓸 때도 꽤 많이 있어요." 판로를 넓히는 날엔 손님을 직접 만나 브랜드를 소개하거나, 룩북을 만들어 메일로 발송합니다.
· 점심 이후 | 센터 근처 정원으로 산책을 나섭니다. 움직이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날그날 달라진 식물의 모양을 눈에 담아 오는 시간이기도 하죠. 다시 오후 작업으로 돌아가기 전, 하루 중 온전히 그를 위해 비워두는 유일한 힐링이자 영감의 시간입나다.
· 오후, 방문 예약이 있는 날 | 사무실 공간을 쇼룸처럼 열어 바이어와 고객을 직접 맞이합니다. 대부분 인스타그램 예약 후 찾아오는 고객들로,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 하나하나 설명하고 직접 착용해볼 수 있게 합니다.

때론 센터 앞 공원이 영감의 천국이 되기도 한다.
나무와 철로 본질에 대답하는 법
가구·오브제 디자인 스튜디오 '신유' 유승민 창작자
'신유'라는 이름은 신용섭과 유승민, 두 사람의 성을 합친 것이면서 동시에 일본어로 '참된 친구'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동창인 두 사람은 스웨덴 웁살라의 작은 목공방에서 시작해 팬데믹을 지나며 한국으로 무대를 옮겼습니다.

스튜디오 신유의 대표작 ‘LIN’ 테이블 시리즈
[스튜디오 신유(STUDIO SHINYOO)]
분야: 가구·오브제 디자인(컬렉터블 디자인) / 브랜드 시작: 2019년, 스웨덴 웁살라/
서울디자인창업센터 입주: 2023년, 홍대 캠퍼스
(https://www.instagram.com/studio_shinyoo/ · https://studioshinyoo.com/)
작업의 아이디어가 어디서 오느냐는 질문에 유승민 창작자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영감이랄 게 딱히 엄청나게 있다기보다는, 결국에 일상에서 발견하는 거 같아요. 저랑 용섭님은 둘 다 건축물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두 사람은 종종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과연 건축의 어떤 점이 이토록 우리를 매료시키는 걸까?"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아름답다고 여겨온 것들 앞에서, 그들은 거듭 이유를 물었고 자신들만의 답을 찾아냈습니다. "시대나 나라가 달라도 건축양식에서 가장 마지막에 남은 본질적인 요소가 있더라고요. 그 두 가지만을 남겨뒀죠." 나무를 강한 화력으로 그을려 결을 살리는 기법과 평철을 교차해 쌓아 올린 구조를 유리 상판 아래 그대로 드러낸 대표작 '린 테이블' 또한, 동서양에 모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 언어인 '기둥보' 양식에서 얻은 답입니다. 자연 소재인 나무의 우연성과 산업 재료인 철의 규칙성을 한 테이블에 나란히 두는 방식. 이것이 바로 신유가 정의하는 ‘본질’이라는 미의식입니다.

나무를 그을리고, 자르고, 평철과 조립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의식이다.
지금 두 사람은 물리적으로도 다른 자리에 있습니다. 신용섭은 핀란드 헬싱키에서 북유럽의 나무를 깊이 연구하고, 유승민은 서울에서 커머셜 프로젝트와 공공미술 사이를 오갑니다. 오는 9월과 10월에는 스웨덴 문화원과 프랑스 한국문화원에서 각각 개인전과 기획전을 앞두고 있어 패킹과 설치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그는 가장 현실적인 언어를 골랐습니다. 작업을 이어가는 데 필요한 건 거창한 비전보다 우선 발 디딜 자리라는 것. 합리적인 비용으로 안정적인 작업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디자인창업센터에 들어올 이유는 충분했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는, 지금의 작업 반경을 조금 더 확장하는 데 있습니다. 최근 몇몇 에이전시와 함께 공공미술 영역을 계속 타진하고 있고, 버켄스탁 같은 글로벌 브랜드의 공간 기획부터 시공까지 전부 담당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입니다. 커머셜과 아트, 가구와 공간, 서울과 헬싱키를 오가며 쌓아온 방식 그대로, 신유의 다음 챕터 또한 어느 한쪽으로 좁혀지기보다는 계속 넓어지는 쪽을 향합니다.

최근 진행한 버켄스탁의 리테일 공간. 절제된 구조 안에서 물성 본연의 질감에 집중했다.
유승민 창작자의 하루
작업과 세일즈, 두 가지를 모두 담당해야 하는 그이므로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하루를 보냅니다.
< 오이도 작업실에 있는 날 >
대화도 미팅도 없이 온전히 작업에만 몰두합니다.
"이 오이도 작업실에 왔을 때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금세 오후가 되어버리죠"
< 홍대 캠퍼스로 출근하는 날 >
· 출근 직후 |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엽니다.
· 오전 초반 | 상주 직원과 미팅. 스웨덴에 있는 신용섭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 보니 그날 하루를 깔끔하게 마무리 짓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전날 어떤 일이 남았는지와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부터 함께 정리하고 시작합니다.
· 오전 중 | 메일링 체크와 발주 처리. 재료를 다루는 일의 특성상 관련 연락은 되도록 오전에 몰아 끝냅니다. 오전 발주와 오후 발주는 수령일이 하루 이틀씩 차이 나고, 주말이 끼면 그 격차가 더 벌어지기 때문에 가급적 빠르게 처리하려고 합니다.
· 점심 이후 | 커피를 한 잔 더 마시며 오후를 준비합니다.
· 오후 | 그날 우선순위에 따라 디자인 작업을 하거나, 제안서와 기획서를 씁니다.
· 오후 미팅 | 미팅은 주로 이 시간대에 몰려 있는 편. 클라이언트가 보여줄 자료가 있는 자리이거나 처음 미팅 시에는 대개 직접 찾아갑니다. 반대로 작업물을 직접 봐야 하는 자리는 작업실로 초대하기도 합니다.

완성된 가구 위에 직접 앉아보는 것으로 그의 하루가 마무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