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 '아트 파트너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교차로 위에 선보인 소피아 리베키의 머틀 메도우즈>. 몇 평 되지 않는 자투리 땅이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사진: NYC DOT / Flickr (CC BY-NC-ND 2.0), 작품: 《머틀 메도우즈》 by Sophia Livecchi
뉴욕의 한 자투리 공터는 몇 달째 '벽화 갤러리'로 살고 있습니다. 파리의 센강변은 딱 여름 두 달만 해변으로 부업을 뛰고요. 런던의 한 공원은 해마다 완전히 다른 건축물로 잠깐 변신했다가, 가을이 되면 미련 없이 사라집니다. 한때 도시계획이란 도로 폭을 정하고 광장을 만들고 건물을 세우는, 형태를 완성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전 세계 도시들은 정반대로 움직이는데요. 저비용·단기 개입으로 공간의 새 쓰임을 시험해보는 이 방식은 '택티컬 어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퍼져 나갔고, 정해진 기간에만 변신하도록 아예 처음부터 설계된 프로그램들로 넓어지고 있습니다. 본캐는 건드리지 않고 부캐만 잠깐 켜는 일,
그것이 지금 이 도시들이 공유하는 태도입니다.
관이 그린 벽화 & 주민이 그린 도로
뉴욕과 댈러스, 예술이 된 거리
뉴욕시 교통국은 2025년 2월, '아트 파트너스'라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선보였습니다. 중앙분리대나 삼각지, 보행자용 자투리 아스팔트처럼 도로 위 자잘한 공간에, 지역 단체가 자체 예산으로 최대11개월간 임시 미술작품을 설치할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2008년부터 이어진 뉴욕시 교통국 아트 프로그램까지 합치면 지금까지 도시 곳곳에 놓인 임시 작품만 475 점. 이다니스 로드리게스 교통국장은 "공공미술은 뉴욕 시민에게 영감을 주고, 커뮤니티를 만들고, 환대하는 공공공간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퀸스 리지우드의 한 교차로, 아스팔트 위에 그려진 소피아 리베키의 <머틀 메도우즈>도 그런 사례 중 하나입니다. 보행자 안전과 커뮤니티의 연결을 위해 뉴욕시 교통국이 위촉한 이 그림은, 도로 위에 그려진 만큼 차량과 날씨에 마모되면 언젠가 다른 그림으로 다시 그려질 것입니다.

(왼쪽) 브루클린 힐렐 플레이스 광장을 분홍빛으로 물들인 해미 한의 <핑크 클라우즈> ©사진: Haemee Han, 작품: 《핑크 클라우즈(Pink Clouds)》 by Haemee Han (NYC DOT Art Partners 2026), (가운데) 허드슨 스퀘어 도로를 물들인 다시크 페르난데스의 <어반 플로우>. 나무껍질의 결에서 착안한 색띠가 보행자의 움직임을 그대로 담아낸다. ©사진: Ben Lau and Ryan Muir, 작품: 《어반 플로우(Urban Flow)》 by Dasic Fernandez (NYC DOT Art Partners 2026, Hudson Square BID와 협업) (오른쪽) 자전거, 스쿠터 등 마이크로모빌리티를 위한 보호형 교차로 '스핀 스페이스(Spin Space)'를 선보인 팀 베터블록. ©사진: Team Better Block (Instagram)
같은 시기 댈러스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2010년4월, 음악가이자 활동가인 제이슨 로버츠는 유럽 여행에서 마주쳤던 활기찬 골목을 잊지 못해 친구들과 낙후된 오크클리프의 한 블록을 바꿔보기로 한 겁니다. 이들은 소품 창고에서 밤을 새워 준비물을 만든 뒤 금요일 저녁 하룻밤 사이 도로에 페인트로 자전거 도로를 새로 긋고, 비어 있던 상가에 카페와 꽃집과 갤러리를 채우고, 거리에 조명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날 밤 어긴 조례들을 인쇄해 창문마다 붙여뒀습니다. (허가는 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용은 1,000 달러도 들지 않았지만, 로버츠의 말대로 "거리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사람들이 걷고 앉고 연주했고, 아이들은 새로 그어진 자전거 도로 위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하룻밤짜리 반란은 이후 팀 베터블록이라는 이름으로 발전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소개된 건 물론 멜버른과 테헤란까지 퍼졌습니다.
한쪽은 관이 주도한 예술 프로젝트였고, 다른 한쪽은 허가 없이 조례를 어기며 시작된 즉흥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도시가 도달한 결론은 같아 보입니다.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스스로 예술을 그려 넣었다는 점이죠.
택티컬 어바니즘이란?
저비용·단기 개입으로 도시 공간의 새로운 쓰임을 시험하는 도시계획 방법론입니다. 임시 벤치나 페인트만으로 도로의 성격을 바꿔보는 실험에서 출발했지만, 최근에는 하나의 장소에 시간대와 계절에 따라 여러 역할을 부여하는 공공공간 프로그래밍으로 그 개념이 넓어지는 중입니다. 아트 파트너스와 베터블록 모두 이 방법론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여름엔 모래사장, 가을엔 벽돌담
파리와 런던, 일 년마다 다시 태어나는 자리
파리는 2002년부터 매년 여름 같은 실험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베르트랑 들라노에 당시 시장의 제안으로 시작된 파리 플라주는, 센강변을 달리던 조르주 퐁피두 고속도로 약 3킬로미터 구간을 7월과 8월 두 달간 폐쇄하고 그 자리에 모래와 야자수, 비치체어와 수영장, 카약 스테이션을 통째로 들여놓는 프로그램입니다. 여름이 끝나면 도로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모든 설치물은 애초에 철거가 가능하도록 설계됩니다. 비영구성이 이 프로젝트의 조건 그 자체인 것입니다. 첫해에만 사백만 명이 다녀갔고, 스물세 번째를 맞은 2024년에는 센강변과 라빌레트 운하, 생마르탱 운하 세 곳에서 파라솔 650개, 선베드 1,300개, 수영구역 세 곳과 미스팅존이 함께 운영됐습니다.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화창한 날들이 파리를 스포티하고 축제 같고 대중적인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파리 플라주, 고속도로였던 자리에 펼쳐진 강변 휴식 공간.
런던은 다른 방식으로 같은 원칙을 지킵니다. 2000년부터 켄싱턴 가든의 서펜타인 갤러리 앞마당에는 매년 여름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완전히 새로운 임시 건축물이 들어섭니다. 첫 파빌리온은 자하 하디드가 설계했고, 이후 비야케 잉겔스, 소우 후지모토, 헤르초크 앤드 드 뫼롱 같은 이름들이 거쳐갔습니다. 6월에 문을 열어 10월이면 통째로 해체되는데, 해체된 파빌리온은 개인 컬렉터에게 팔리거나 다른 부지로 옮겨져 두 번째 삶을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2026년의 메인 파빌리온은 멕시코시티를 기반으로 한 란자 아틀리에가 설계한 <어 서펜타인>으로, 벽돌을 구불구불하게 쌓아 적은 재료로도 안정적인 구조를 만드는 영국 전통의 서펜타인 월에서 착안해 서펜타인 호수를 은유하는 곡선 벽을 세웠습니다. 올해는 6월 6일부터 10월 25일까지 문을 여니, 런던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이 거대한 예술의 호수를 놓치지 마시기를.

(첫 번째, 세 번째) 켄싱턴 가든, 서펜타인 사우스 인근에 설치된 헤수스 라파엘 소토의 <페네트라블 BBL 존느>. 4,000가닥에 이르는 노란 줄 사이를 관람객이 직접 통과할 수 있다. © Jesús Rafael Soto / ADAGP, Paris 2026. Courtesy Atelier Soto, Paris and Galerie Perrotin. Photo: George Darrell. Courtesy Serpentine, (두 번째) 1970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개인전 'Soto'에 출품된 '작은 페네트라블'. 소토의 관통형 조각 시리즈는 반세기 전부터 이어져왔다. © MSU, Zagreb
두 도시 모두 '완성'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파리는 고속도로를 여름마다 다시 해변으로 바꾸고, 런던은 같은 자리에 매번 다른 건축을 세웠다 허뭅니다. 이곳에서 공공공간은 한 번 짓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년 다시 지어야 완성되는 어떤 것에 가깝습니다.
광장에 누운 사람들
서울광장, '눕독'이 있는 오후
서울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만날 수 있습니다. 도심 한복판, 빈백에 몸을 기대거나 아예 신발을 벗고 누운 채 책을 읽는 사람들인데요. 2022년 서울광장에서 처음 시작된 서울야외도서관은 이제 광화문광장과 청계천으로도 넓어졌습니다. 올해도 혹서기를 제외한 봄부터 가을까지 운영되며, 서울광장에는 사람들이 편하게 기대거나 누워 책을 읽을 수 있는 알록달록한 빈백이 놓입니다. 서울시가 공식 영문 페이지에서 이 공간을 'The Living Room of the City', 도시의 거실이라고 소개한 것도 이런 이유죠.
'눕독(누워서 독서)'이라는 말이 흥미로운 건 아무것도 짓지 않았다는 점이 있습니다. 걷고 가로지르던 광장이 신발을 벗는 순간 통행이 아닌 생활 공간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뉴욕이 벽 하나를, 파리와 런던이 도로와 건축 하나를 통째로 바꾸는 동안, 서울광장은 그저 광장에 누워 있어도 된다는 허락만으로 같은 일을 해냈습니다.

서울광장 눕독 현장, 빈백에 눕거나 기대어 책을 읽는 사람들.
은빛 건물이 스크린이 되는 시간
서울라이트 DDP 2026 가을, 열흘의 기록
이 흐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씬을 소개하겠습니다. 뉴욕이 벽에, 파리가 고속도로에, 런던이 공원 한 켠에 임시로 다른 얼굴을 씌우는 동안, DDP는 건물 자체를 빛과 소리로 감싸 통째로 다른 세계로 만들었습니다. 9월의 어느 선선한 저녁 7시 30분, DDP의 222미터 외벽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첫 비트가 울립니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재해석한 'The Break Point'는 음악의 박자에 맞춰 빛의 색과 형태가 실시간으로 요동치도록 설계됐습니다. 곡선을 따라 빛이 부서지고 다시 모이는 사이,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든 채로 굳어버립니다. 이어지는 유영국의 '내 안의 산을 찾아서'는 DDP의 매끄러운 곡면을 능선처럼 바꿔놓습니다. 화가가 평생 그려온 추상의 산이, 평평한 캔버스를 벗어나 건물 하나를 통째로 접어 만든 산맥이 되는 순간입니다. 마지막 '말이 빛나는 밤'에서는 『청구영언』의 옛 한글 노랫말이 한 획 한 획 빛의 붓질처럼 벽을 타고 흐릅니다. 몇백 년 전 시조의 자음과 모음이, 오늘 밤 이 도시에서 다시 살아난 셈입니다.
오프닝의 밤은 여기에 라이브 음악까지 얹힌 날이었습니다. 백남준 아트워크를 배경으로 이디오테잎의 신스 사운드가 터지자 조명은 그 박자를 그대로 받아 곡면을 타고 튀어 오릅니다. 처음엔 다들 팔짱을 낀 채 구경만 하던 사람들이, 베이스가 한 번 더 깊게 내려앉는 순간부터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합니다. 발밑까지 울리는 저음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아마 못 이기는 척 함께 리듬을 타고 있었을 것입니다.
9월 3일부터 13일까지 열린 이 행사의 대주제는 'DAYBREAKER', 세부 주제는 'K-Original Light'였습니다. 매일 저녁 7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세 편의 미디어파사드가 반복됐고, 3일 IDIOTAPE, 4~5일SION, 6일과 12일 HYPNOSIS THERAPY, 11일과 13일 SOULSCAPE의 라이브 공연이 백남준의 아트워크에 더해진 날에는 음악과 조명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광장 전체를 하나의 객석으로 만들었습니다.
서울라이트 DDP 가을 콘텐츠 순서
상설 라이트쇼 DDP 365라이트 - '미래의 빛, 시간의 울림을 통과하다’
국립한국박물관 &『청구영언』협업 - '말이 빛나는 밤'
서울시립미술관 협업 유영국 - '내 안의 산을 찾아서'
경기도백남준아트센터 협업 백남준 - 'The Break Point'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2026년 버전으로 재해석한
4개 아티스트 그룹의 라이브 공연(IDIOTAPE, SION, HYPNOSIS THERAPY, SOULSCAPE)

서울라이트 DDP 오프닝 행사가 열렸던 9월 3일 DDP 미디어 파사드 전경. 빛의 파티로 시작한 황홀한 파티는 신스사운드와 함께 축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서울라이트가 끝난 DDP는 다시 낯익은 은빛 표면으로 돌아갔습니다. 뉴욕의 벽화도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다른 그림에 자리를 내줄 것이고, 파리의 모래사장도 가을이면 자동차 도로로, 런던의 파빌리온도 10월이면 해체돼 어딘가로 옮겨질 것입니다. 서울광장의 빈백 역시 계절이 바뀌면 걷힙니다. 공간은 매번 정확히 원래 자리로 돌아갑니다.

서울라이트 DDP의 전경
관이 주도했든 주민이 시작했든, 도로였든 건축이었든 광장이었든, 이미 있는 공간의 변신만으로도 도시는 이토록 색다르게 변합니다. 지난 세기의 도시가 새로운 건물을 통해 미래를 보여주었다면, 이미 충분히 지어진 오늘의 도시들은 조금 다른 질문 앞에 서 있듯 합니다. 무엇을 더 지을 것인가보다, 이미 있는 도시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장면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이 창의적인 호기심 말입니다.
서울라이트DDP의 빛이 다시 켜질 다음 가을에도,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