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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른 웃존 "나는 건축물이 아닌 예술품을 조각하였기에 누구도 이곳을 완성할 수 없다. 태양과 빛, 구름이 이곳을 살아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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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분류
등록자
SDF*
등록일
2017-08-21

나는 건축물이 아닌 

예술품을 조각하였기에 누구도 이곳을 완성할 수 없다. 

태양과 빛, 구름이 이곳을 살아있는 곳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I have made a sculpture. You will never be finished with it. 

Together with the sun, the light and the clouds, it makes a living thing.

 

오페라 하우스의 전경모습과 요른웃존이라고 써있는 이미지
 

시드니의 랜드마크, 오페라하우스의 건축가

[    요른 웃존    ]

1973년에 준공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건축 형태와 구조적 설계의 모든 면에서 뛰어난 창의력과 혁신적인 기술을 결합한 근대식 건물입니다. 

 

오페라하우스의 야경모습
 

세계적으로 칭송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호주 사람들에게는 보물과도 같은 존재죠.

1973개장한 이래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4천5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100,000회가 넘는 공연을 관람하였으며, 

근처를 방문한 사람들의 수를 모두 합치면 1억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러나 그런 오페라하우스의 건축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호주 국기가 그려져있는 호주 지도
 

© 구글

 

1954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 지사인 ‘조셉 케이힐’은 시드니에 호주를 대표하는 

문화, 예술, 오락의 구심점이 될 만한 건축물을 짓고자 했습니다.

 

이에 따라, 국제적인 건축 디자인 공모전을 열게 되었습니다.

공모전 주제는

 

 미래를 바꿀만한, 

현재의 디자인과는 다른 

혁신적인 디자인

 

사실, 1차에서 선발된 작품 중 요른 웃손의 작품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심사 시작일보다 늦게 도착한 이에로 사리넨은

이미 탈락했던 요른 웃손의 디자인에 꽂히게 되었고,

그렇게 그의 작품이 선발됩니다.

 

요른 웃존의 공모전 제출 작품-계단에 사람들이 서있는 드로잉
▲ 요른 웃존의 공모전 제출 작품 

 

당시 요른 웃존은 38세의 무명 건축 디자이너였습니다. 

선정된 제출작 또한 어떠한 건축설계도나 공학적인 요소도 반영하지 않은 드로잉 수준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요른 웃존은 천재성으로 유명세를 치르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 제작을 할 당시

이로 인한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습니다.

 

오페라하우스 건축 당시의 현장사진
▲ 오페라하우스 건축 당시 

 

지질학적 조사가 충분치 않았고, 둥근 형태의 지붕은 어떻게 제작할 것인지 구체적인 대책이 부족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건축 기간을 무한히 연장시켰고, 

비용 또한 '상상초월의 액수'로 증폭시켰습니다.

초기 예상 비용은 350만 파운드였지만 최종 비용은 1억 200만 파운드로 30배 가까이 뛰었고, 

4년의 기간이 예정되었던 공사는 15년 만에 끝나게 됩니다.

 

요른 웃존의 앉아있는 모습 

요른 웃존 ©Utzon Center

 

내 디자인을 실현하는 데에 

비용이 얼만큼 들든, 어떤 추문이 떠돌게 되든, 또 얼마나 오래 걸리든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 실현 자체다.

(I don't care what it costs, I don't care what scandal it causes, I don't care how long it takes, 

but that's what I want.)

 

오페라하우스의 실제 시공을 위해 본래의 설계를 변형시키는 것을 극도로 꺼려할 정도로 

자신의 디자인에 애착을 드러냈던 요른 웃존 또한 그 과정에서 점점 지쳐갑니다. 

갑작스레 형이 죽고, 정부와도 좋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면서 건축현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수도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오페라하우스 모형앞에 서 있는 요른 웃존의 모습

 

결국, 정치적인 영향으로 요른 웃존은 사임하기까지 이릅니다.

오페라하우스가 완공된 이후에도 그는 유지, 보수 과정에서 시드니에 가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에서 그의 복직을 탄원하는 성명서까지 작성했죠.

그러나, 그는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웹페이지에 게시된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요른웃존의 이미지
©2017 The Hyatt Foundation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완성된 지 30년이 지나고

요른은 이 건물의 설계자로서 프리츠커상* 을 받습니다.

(* 인류와 환경에 중요한 공헌을 한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분야 최고 권위의 상)

 

그가 디자인한 오페라하우스가 세계적으로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 건축물인지 알게 해줍니다. 

그러나 그는 오페라하우스를 언급하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그에게 오페라하우스란 "건축물"이 아닌, "예술품"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제작 과정에서 "이상"과 "현실"간의 괴리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런 점에 있어서,

비운의 예술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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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디자인재단 블로그 :http://blog.naver.com/iloved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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