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 디자인 산업의 중심, 서울
“의미는 좋은데, 과연 팔릴까?” 많은 소규모 디자인 기업이 품어온 이 질문에, 서울이 유의미한 답을 내놓았다.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이하 “재단”)이 2023년부터 3년간 함께 추진해온 ‘지속가능한 디자인 제품·서비스 판로개척 지원’ 사업의 이야기다. 이 사업은 거창한 담론보다 분명한 목표에서 출발했다. 지속가능한 디자인이 의미 있는 가치를 넘어, 실제 시장에서 선택받는 제품이 되도록 돕는 것. 그리고 그 결과는 숫자와 현장 모두에서 확인되고 있다.
경쟁력 있는 ‘상품성’을 증명하다
‘달팽이 언박싱 커터’로 해외 소비자의 공감을 이끌어낸 피그랩의 딱따구리의 숲 연필 꽂이 외. 폐목재와 칫솔 부산물로 발생하는 자투리 플라스틱을 활용한 친환경 사무용품이다.
3년간 이 사업을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기업은 총 56곳이다. 이들이 이룬 성과는 단순한 참가 경험이 아니라, 실질적인 유통과 매출로 이어졌다. 무신사, 29CM, SSG닷컴, 롯데뮤지엄 아트숍, 아마존 등 소규모 기업이 혼자서는 진입하기 어려운 대형 플랫폼에 총 149건의 입점 계약이 성사됐다. 지속가능성이 ‘착한 선택’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상품성’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이 성과의 배경에는 재단의 종합 지원 체계가 있다. 맞춤형 컨설팅, 국내외 페어 참가, 유통사 연계, 시민 참여형 축제까지 디자인 기업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과정을 단계별로 설계했다. 특히 브랜드, 마케팅, 디자인 개선을 위한 밀착형 컨설팅은 참여 기업들이 ‘시장에 나가기 위한 언어’를 익히는 데에 주효했다. 2025년 6월에 열린 밋업데이와 1:1 컨설팅에는 헬로오스틴 신영웅 대표, 마음스튜디오 이달우 대표, 저스트프로젝트 이영연 대표가 참여해 해외 전시 전략, 홈페이지 개선, 리브랜딩 등 기업 맞춤형 조언을 전했다.
로컬에서 글로벌까지
국내외 유통판로 개척 지원
지속가능 디자인의 가능성은 해외에서도 확인됐다. 참여 기업들은 파리 ⟪메종&오브제⟫, 도쿄 ⟪도쿄 기프트쇼⟫에 참가하며 해외 바이어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파리 ⟪메종&오브제⟫에서 운영된 서울관은 다양한 구매자와의 연결을 통해 2026년 2월 프랑스 제품 발매 제안, 9월 한–불 수교 140주년 기념 팝업 제안까지 이어지며 서울 디자인의 다음 행보를 준비 중이다.
(주)플레이31의 친환경 놀이키트 및 DIY 키링. 재생 플라스틱, 업사이클 종이, 폐자원 등 순환 소재를 사용했다.
또한 도쿄에서는 ‘플레이31’이 일본 토이 저널의 관심을 받으며 창의적 디자인으로 호평을 얻었고, ‘피그랩’은 ‘달팽이 언박싱 커터’로 소비자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또한 파리 ⟪메종&오브제⟫에 참가한 ‘디아렌토’는 해외 구매자와 직접 연결되며 새로운 기회를 만났고, ‘하트플래닛컴퍼니’는 독일 편집숍 ‘블링크윌킷’과 계약을 체결하는 등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하트플래닛컴퍼니(주)의 친환경 담요. 페트병에서 추출한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원사로 제작했다.
시민이 직접 경험한 지속가능성
시민 참여형 축제 ⟪그린칩스 페스티벌⟫
이 사업이 특별한 또 한 가지 이유는 시민과의 접점에 있다.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보고, 걷고, 체험하도록 만든 것이다. 시민 참여형 축제 ⟪그린칩스 페스티벌⟫은 2025년에 3년 차를 맞아 DDP를 비롯해 연남·연희, 성수, 서촌 등으로 무대를 넓히며 누적 22만 명의 방문객을 기록했다. DDP 어울림광장에서는 그린칩스 제품으로 꾸민 호텔 콘셉트 쇼룸 팝업이 열렸고, 둘레길 갤러리에는 20개 참여기업의 제품이 전시됐다. 연남동에서는 ‘그린칩스 타운 호텔’이라는 콘셉트로 도시탐험가, 홈 가드너 등 라이프스타일별 객실을 구성해 친환경 실천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설계했다. 객실 미션을 통해 친환경 굿즈를 받고, ‘라운드(RRound)’ 앱 챌린지와 연계해 11만 건 이상의 실천 인증 게시물이 기록되며 오프라인 경험이 온라인 참여로 확장됐다. 또 연남·연희 지역 22개 상점과 협업해 동네 전체가 축제의 무대가 되는 풍경도 만들어냈다.
지속 가능 디자인의 다음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은 앞으로도 지속가능 디자인 기업의 판로를 넓히고, 시민이 일상에서 지속가능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캠페인을 이어갈 계획이다. 재단의 차강희 대표이사는 “디자인은 도시의 일상에 스며들어 변화를 만들어야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며 “지속가능 디자인 산업을 지원해 일상에 지속가능한 가치가 확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속가능 디자인은 특별한 전시나 캠페인에 머무르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지금, 로컬의 실험이 글로벌 무대까지 이어지는 변화가 이미 일상 속에서 시작되고 있다.
사진 제공 | 서울디자인재단